건강관리를 하면서도 먹는 즐거움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소비자들이 많아지면서 ‘헬시 플 레저(Healthy Pleasure)’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고 있다. 이런 니즈에 부응하기 위해 건 강한 음식은 맛이 없다는 편견을 깨려 노력하는 기업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싱가포르 푸드 테크 스타트업 ‘알케미’는 당뇨 환자나 고위험군, 건강에 민감한 대중을 위해 저혈당지수 (Low GIycemic Index) 식품을 내놓되 창업 초기부터 맛과 식감에 있어 타협은 없다는 원 칙을 갖고 연구개발에 매진했다. 5년간의 연구개발 끝에 환자를 상대로 하는 병원, 의료 관 계자뿐 아니라 대중을 상대로 하는 식당, 식품 회사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차별화된 포지 셔닝을 구축하고 있다.
글로벌 최대 샌드위치 체인점의 쿠키가 바뀐다
1965년 설립돼 전 세계 104개국에 3만7000 여 개가 넘는 매장을 보유한 글로벌 샌드위치 체인점 ‘서브웨이’는 샌드위치 못지않게 쿠키 로도 유명하다. 그런데 2023년 2월, 이 브랜드 의 쿠키가 바뀌었다. 브랜드 역사상 처음으로 설탕 함량을 50% 이상 대폭 줄인 새 쿠키를 싱 가포르 전역 130여 개 매장에 선보이면서 기존 쿠키를 완전 대체한 것이다. 한발 더 나아가 서 브웨이는 싱가포르를 시작으로 이 새로운 쿠키 를 아시아 2300여 개 매장에 출시하는 한편 더 건강한 샌드위치 빵 같은 추가 제품군도 확장하 려는 계획이다.
필자가 거주하고 있는 싱가포르의 사람들은 커피나 밀크티의 당도를 조절해서 마시는 것 을 좋아하고 ‘siew dai(少底)’라고 불리는 당도 가 덜한 옵션을 단계별로 선택하는 데 익숙하 다. 서브웨이가 브랜드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간 판 상품인 쿠키에 변화를 주기로 결정한 것은 이런 소비자들의 수요를 전격 반영한 결과다. 실제로 서브웨이가 올해 개시한 ‘siew dai’ 캠 페인은 그동안 샌드위치와 함께 초콜릿 칩 쿠 키를 구 하고 싶었지만 높은 당도로 인해 망 설였던 소비자들을 겨냥해 설탕 함량을 기존 의 50% 이하로 낮춘 쿠키를 출시하는 것을 골 자로 한다.
하지만 단순히 저당 옵션을 내놓는 게 아니 라 기존 쿠키를 교체하는 이 같은 결정을 내리 기 위해서는 어렵지만 중요한 전제가 먼저 충족 돼야 했다. 바로 맛과 식감은 변하지 않아야 한 다는 점이다. 맛과 식감이 변하면 서브웨이 쿠 키를 찾던 기존 고객들이 실망해 이탈할 수 있 기 때문이다. 이 어려운 과제를 달성하기 위해 서브웨이가 선택한 파트너가 바로 싱가포르의 푸드테크 회사 ‘알케미’다. 서브웨이는 처음 제 품 기획 단계부터 연구개발과 출시의 전 여정을 알케미와 함께 진행했다. ‘맛에 타협 없는 더 건 강한 식품’이라는 알케미의 미션이 서브웨이의 니즈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이에 알케미는 창업 후 5년간 자체 연구개발 을 통해 쌓은 100여 개의 식물성 기반 식이섬유 믹스 데이터베이스를 바탕으로 서브웨이가 지 향하는 쿠키의 맛, 질감, 풍미를 보존하면서 탄 수화물 및 당 조절 목표에는 부합하는 맞춤형 레서피를 만드는 데 매진했다. 이번 쿠키 출시 는 1년 이상 진행된 양사의 개발 노력 끝에 나온 성과다. 그렇다면 신생 스타트업 알케미는 어 떻게 글로벌 최대 샌드위치 패스트푸드 프랜차 이즈의 깐한 눈높이를 만족시키며 회사의 쿠 키를 교체하고 장기적인 협업 파트너로 자리 잡 는 데 성공할 수 있었을까?
건강식은 맛없다는 편견을 깨다
알케미의 창업자 앨런 푸아(Alan Phua)는 친 척 중 7명 이상이 당뇨병을 앓고 있어 오랜 기간 당뇨병이 환자와 가족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 해 고민해 왔다. 또한 가족력으로 인해 본인의 당뇨병 예방에도 관심을 가져야 했다. 그중 가 장 중요한 문제는 환자들의 식단 관리였고 꾸준 한 식이요법으로 혈당을 관리하는 게 치료 및 예방의 핵심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렇지만 통계에 따르면 싱가포르에서 당뇨 고위험군에 속하는 사람들은 현미밥이 흰쌀밥보다 몸에 좋 은 것을 알면서 8% 정도만 정기적으로 현미밥 을 먹고 있었다. 이는 건강에 도움이 되더라도 맛이 보장되지 않은 건강 식단을 일상에서 자연 스럽게 실천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준 다. 이제껏 수많은 식품 회사가 당이 낮게 함유 된 당뇨병 특화 제품을 출시하고도 시장의 외면 을 받아온 이유이기도 하다. 기존 제품의 동일 한 맛과 향을 유지하는 게 그만큼 어렵다는 의 미다.
이에 알케미는 고혈당 수치의 주요 원인인 흰 쌀밥, 국수, 식빵 같은 필수 주식을 저혈당지수 (Low GIycemic Index)의 다이어트식으로 전환 하되 사업 성공의 필수 요소는 기존 음식과 동일 하거나 더 좋은 맛과 식감이라고 결론지었다. 그 리고 창업 초기부터 연구개발에만 집중했다. 이 렇게 5년간 연구개발을 한 끝에 회사는 원재료의 맛을 크게 바꾸지 않으면서도 당을 낮추는 섬유 질 ‘알케미 파이버(Alchemy Fiber)’를 식품에서 추출했다. 쌀, 국수, 빵, 케이크, 요구르트, 음료 등 완제품에 이 섬유질을 첨가해 출시할 수 있는 레서피를 100여 가지 이상 개발했다.
알케미는 이 기술을 가지고 17개국에서 특허 를 획득한 뒤 동남아 40여 개 식품회사와 제품 개발 및 판매를 시작했다. 알케미 연구팀이 5년 의 시행착오와 심층 연구를 통해 구축한 핵심 역량은 다음과 같다.
광범위한 식물성 식이섬유 및 전분의 특성과 효능 극대화 노하우. 식물성 식 이섬유 원료로는 치커리 뿌리, 완두콩, 옥수수, 타피오카, 괴경 뿌리, 콩 등이 포함돼 있음.
쌀, 국수, 빵, 케이크 등 수많은 제품의 다양한 조리 과정과 제조 여건에서 적 용할 수 있는 식품 유형과 효능 측정에 관한 적합성 분석 데이터. 가령, 빵을 구 울 때 오븐의 온도가 섭씨 230도가 넘 어가더라도 혹은 케이크를 구울 때 섭 씨 180도가 넘어가더라도 고온에서 알 케이 파이버가 동일한 효능을 낼 수 있 게 만드는 기술.
알케미 파이버를 활용해 탄수화물의 당 전환율을 획기적으로 낮추는 기술. 당 지수(GI)가 높은 음식은 혈당을 빠르게 높여 인슐린 분비를 급격하게 유발하고 당 지수가 낮은 음식은 혈당을 서서히 높여서 인슐린이 혈당을 안정적으로 조 정. 당 지수가 높으면 혈당 상승으로 인 슐린이 분비되고, 과다한 인슐린이 혈 중 포도당을 지방으로 축적시켜 폭식을 유발. 이에 같은 칼로리라도 당 지수를 낮춘 음식은 인슐린 분비를 최소화하고 인슐린으로 인한 반응성 저혈당(극심한 공복감)과 지방 축적을 막아 다이어트 에 도움을 줄 수 있음.
알케미의 대표 제품으로는 알케미 파이버 라 이스 블렌드가 있다. 치커리 뿌리, 구아콩 및 캐 롭에서 추출한 혼합물인 알케미 파이버를 백미 에 첨가하면 섬유질을 10배 높이고 전분에서의 당분 배출을 현미와 같은 수준으로 늦추면서 백 미밥과 동일한 맛을 낸다. 이 제품은 호주 시드 니대 GI 연구소(SUGiRS)에서 임상 테스트를 통과해 자스민 백미의 높은 GI를 현미와 비슷 한 중간 GI로 낮춘 것을 인정받았으며 흰쌀밥 을 찾는 당뇨병 환자와 위험군이 더 손쉽게 혈 당 관리를 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이 밖에도 케 이크와 쿠키의 밀가루와 설탕을 부분 대체하는 알케미 파이버 위티(WITTY), 아이스크림의 크 리미한 맛을 강하게 만들거나 요구르트의 신맛 을 줄여줌으로써 설탕 등을 대체하는 알케미 노 비(Nobby) 등도 회사의 대표 제품이다.
이처럼 평소 흔히 섭취하는 음식의 대안을 제 공한다는 점, 환자들의 식이요법을 도우면서도 환자를 상대하는 병원뿐 아니라 대중을 상대하 는 식품 회사, 식당 체인의 러브콜을 받고 있다 는 게 알케미의 차별화 요인이다. 실제로 알케 미의 파트너 중에는 싱가포르에서 가장 큰 치킨 라이스 레스토랑 체인 ‘Boon Tong Kee’도 있다. 이렇게 대중화된 큰 프랜차이즈 식당이 선뜻 알 케미와 파트너십을 맺는 까닭도 맛을 해치거나 가격 부담을 지우지 않으면서도 건강한 옵션을 제공한다는 이점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헬시 플레저’로 시작된 무가당 전쟁과 알케미의 가능성
당뇨 인구가 늘어나고 식이요법에 대한 관심 이 높아지는 것은 해외 얘기만이 아니다. 한국 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대한당뇨병학회 가 2020년 발간한 보고서(Diabetes Fact Sheet in Korea, 2020)에 따르면 우리나라 30세 이상 성인 7명 중 1명이 당뇨병을 앓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당뇨병 환자 가운데 3분의 1은 본인이 당뇨병인지조차 모르고 있었고 제대로 혈당 수 치를 관리하고 있는 비중은 30%에도 못 미쳤 다. 여전히 이미 약으로 질환을 조절하고 있기 때문에 식단 관리가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환자도 있다.
그렇지만 이렇게 당뇨 환자와 고위험군이 늘 어나고 소비자의 인식이 개선될수록 건강을 생각한 여러 옵션이 필요해질 것임은 자명하 다. 요즘 어딜 가나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제로’ 음료 열풍도 이를 반영한다. 제로 음료 는 설탕이나 액상과당 대신 알룰로스, 에리트 리톨, 아스파탐 등 인공 대체 감미료를 사용해 단맛을 유지하되 칼로리와 당 함량을 줄인 음 료를 말한다. 2018년 코카콜라가 설탕을 완전 히 배제하고 100% 스테비아만으로 단맛을 낸 ‘코카콜라 스테비아 노 슈가’를 뉴질랜드에서 처음 선보인 이래 제로 제품들이 쏟아져 나오 고 있다.
한국의 식품 업계도 지금 ‘무가당 전쟁’이 한 창이다. 주류 업계에서도 2022년 9월 롯데칠성 음료가 기타 과당을 빼고 에리트리톨을 추가한 ‘처음처럼 새로’를 출시했으며, 2023년 1월에 는 진로가 ‘제로슈거 진로’를 출시하며 전쟁에 가세했다.
이들 중 무엇이 성공하는 제품이 될 것인지 여 부는 ‘맛’이 판가름할 것이다. 불과 몇 년 전까 지만 해도 “제로 음료는 맛없다”라는 인식이 지 배적이었지만 최근에 이런 편견을 깨고 인공감 미료의 씁쓸하고 찜찜한 뒷맛까지 없앤 제품들 이 등장하는 것도 치열한 경쟁의 산물이다. 다 만 탄산음료나 소주는 식감이 거의 없는 인공감 미료로 대체하기가 상대적으로 쉬운 반면 밀크 티, 요구르트, 오트 우유, 햄버거 빵, 국수, 케이 크같이 단맛만큼 식감도 중요한 식품의 경우 인 공감미료로 대체하기가 더 까다롭다. 밀가루가 식감을 내고 구조를 만드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기에 밀가루를 줄이면 균형이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맛과 식감 평가를 둘 다 통과하기 어 렵거니와 가까스로 시장에 출시해도 재구매율 이 낮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 의미에서 무 가당 전쟁이 식품 전반으로 확산될수록 식감과 구조를 훼손하지 않고 탄수화물 부하를 없애주 는 알케미 파이버에 대한 수요가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코로나19를 지나며 2030세대를 중심으로 건 강에 대한 관심이 더 커졌고 즐겁게 맛있는 음 식을 먹으면서 건강관리를 하는 방법, 소위 ‘헬 시 플레저(Healthy Pleasure)’에 대한 수요가 많 아졌다. 많은 소비자가 건강한(Healthy) 식단을 선택하더라도 즐거움(Pleasure)을 포기하지 않 고 건강관리의 괴로움보다는 즐거움을 찾고자 한다는 얘기다. ‘건강관리는 고통스러운 것’으 로 생각해 고강도 운동을 하고 맛있는 음식을 포기하며 힘겨운 시간을 견뎌야만 한다고 생각 하던 것과 대비되는 모습이다. 이는 맛있는 저 칼로리 음식, 안한 멘탈 관리법, 재미있는 운 동 등 즐겁게 몸과 마음을 챙기도록 돕는 건강 관리 제품과 서비스의 성장 잠재력이 무궁무진 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런 트렌드에 맞춰 2023년 알케미는 야심 찬 확장 계획을 가지고 있다. 현재 다수의 글로 벌 주요 식품 브랜드 및 공급 업체와 식품 개발 을 논의 중이며 회사의 특허 기술을 다양한 필 수 식품에 접목할 채비를 하고 있다. 2022년 말 중국의 코로나 봉쇄가 풀리면서 다양한 중화권 식품 회사와 협력에 속도를 높이고 있으며 관련 인원을 확충해 한국 시장에도 곧 진출할 계획이 다. 점점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헬 시 플레저를 겨냥하는 기업들이라면 맛과 식감 에 집중한 기술력으로 승부하려는 알케미의 행 보를 지켜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